미국자리공 열매와 함께 피어있는 옅은 분홍색의 박주가리안개에 젖은 리오의 밤은 깊어 꽃. 2021년 8월18일 용산 대통령실(옛 국방부) 뒤뜰 무궁화동산 예년에는 부녀자들의 벗이었던 규중칠우(閨中七友) 중에서 바늘을 꽂아 두던 ‘바늘쌈지’가 있었는데 ‘바늘겨레’‘바늘방석’이라고도 불렸다. 색색의 천으로 이어붙인 바늘겨레는 솜이나 머리카락으로 속을 채워넣은 바늘을 꽂아두는 용도로 사용됐다. 그런데 솜 대용으로 박주가리의 부드러운안개속의 풍경 LANDSCAPE IN THE MIST 솜털을 채워 사용하기도 했다고 한다.
호랑나비가 라일락꽃 향내가 나는 박주가리 꽃을 찾아 꿀을 빨고 있다. 2021년 8월18일 용산 대통령실(옛 국방부) 뒤뜰 무궁화동산 에서 그래서인지 박주가리의 다른 이름은 ‘할머니의 바늘겨레’라는 의미의 ‘파파침선포(婆婆針線包)’가 있다.박주가리는 잎이나 줄기에 상처를 입으면 하얀 유백색의 유액(안개도시 乳液)이 나온다. 유액이 나온다고 해서 영어명은 ‘밀크위드(Milkweed)’다. 유액은 스스로 상처를 치유하는 기능이기도 하며 자신을 방어하기 위한 무기이기도 하다. 강한 독성을 지닌 유액은 곤충들이나 동물이 먹으면 탈이 나거나 죽음에 이를 수도 있다.하지만 이런 박주가리 유액의 독성을 이용해 천적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작은 곤충들도 있다. 왕나비과 애안개 속의 풍경재개봉 벌레들과 몽고청동풍뎅이는 독이 있는 박주가리와 공생하며 사는 겁없는 녀석들이다. 의약품이 부족한 시절 박주가리의 독성은 사람에게는 활용하기에 따라 유용한 약재로 사용되기도 했다. 사마귀가 있는 부위에 박주가리 유액을 발라 치료하기도 하고 벌레에 물렸을 때도 활용하기도 했다. 칼에 베인 상처는 명주실 같은 씨앗의 털을 붙여 상처를 치료하기도 했다.전초를 ‘나안개 속에서 2분 더 마’, 열매는 ‘나마자’, 열매 껍질은 ‘천장각’, 뿌리는 ‘나마초’라고 한다. 자양강장에 우수한 효능이 있어 ‘천연비아그라’라는 별명까지 얻기도 했다. 말려서 차로 마시거나 담금주나 효소로 활용하기도 한다.박주가리가 자양강장의 효과가 있다고는 하지만 인삼, 구기자와 더불어 3대 명약으로 불리는 ‘백수오(白首烏)’와는 엄연히 구분되는 식물이다.백수오는 ‘흰악질경찰 머리가 까맣게 된다’는 뜻이다.‘백수오’‘백하수오’‘큰조롱’이라 부르기도 한다.중국의 진시황이 불로초라 여긴 약초 중 하나로 동의보감에서도 늙지 않고 오래오래 살게 하며 머리털을 검게 하고 얼굴빛 좋게 한다는 기록이 있다.백수오와 박주가리는 아주 많이 닮았다. 잎과 열매로 서로 구분한다. 박주가리는 길쭉한 심중 모양으로 줄기와 만나는 잎의 기부가 선명한 V악 은 너무 많다 자 형상이다. 반면 백수오는 완벽한 하트 모양으로 잎의 기부는 둥근 원을 이루는 점에서 구분된다.박주가리 열매는 표면에 돌기가 있어 울퉁불퉁하지만 백수오 열매는 돌기가 없어 미끈하게 빠졌다. 박주가리는 땅속줄기가 자라지만 실뿌리이다. 반면 백수오는 덩이뿌리가 있어 훌륭한 약재로 활용된다.
김연수 사진작가가 2013년 경기 안산시 풍도에서 촬영한악 박주가리 열매. 하얀 털에 달린 씨앗이 하늘을 타고 날아다닌다. 문화일보 자료사진씨방이 ‘툭’ 터지면/씨앗들이 날개 달고/저 멀리 여행을 떠나네//품안 떠난/자식들 걱정에 /다 내어 준/어머니의 빈 가슴처럼/박주가리 씨방만 남아있네>김형순 시인의 시 ‘엄마의 빈방’은 늦가을 박주가리 씨방의 문이 열리자 자식 같은 씨앗들을 하나 둘 너른 세상으로악의꽃InventingtheAbbotts 떠나보내고 남은 모습을 자식들 내보내는 어머니의 빈방에 비유했다.가을부터 겨울에 걸쳐서 반으로 쫙 쪼개진 열매 속에서 면사 같은 하얀 털에 달린 씨앗이 바람을 타고 날아다닌다. 그런 모습 때문에 박주가리의 꽃말은 ‘먼 여행’ 이다. 이렇게 절묘하게 잘 어울리는 꽃말도 드물다.박주가리는 꽃이 모두 지고 열매를 맺는 가을 또는 찬바람 부는 겨울에 더 눈에 띠악의 꽃BROWN AWAY 는개성강한 한 꽃이다. 특히 가을 또는 텅 빈 겨울에 바짝 말라붙은 덩굴 사이에서 하얀 솜털 날개를 달고 비상을 시도하는 박주가리 씨앗들을 만나게 된다. 작은 별꽃일 때는 그다지 눈에 띠지 않다가 가을과 겨울에 민들레 씨앗처럼 먼 여행을 떠나 더욱 눈길을 끄는 그런 꽃이다.글·사진=정충신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