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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26일 이름도 몰라요 성도 몰라···덕분에 승승장구한 그들 [오래 전 '이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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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9년부터 2009년까지 10년마다 경향신문의 같은 날 보도를 살펴보는 코너입니다. 매일 업데이트합니다.

■1979년 11월26일 그들이 서로의 이름을 부르지 않은 이유

로마나 파리 등 해외 유명 관광지에서 소매치기 조심하라는 이야기 많이 들으실 겁니다. 테이블 위에 올려둔 스마트폰이나 카메라는 올려놓는 순간부터 본인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도 하죠.

우리나라에서도 예전엔 사람 많은 거리나 버스·지하철 등에서 소매치기가 흔했습니다. 버스에서 중학교 공과금이 든 지갑을 털린 슬픈 날도 있었고, 서울역 지하도를 함께 걷던 언니가 지나던 사람에게 얻어맞아 정신이 혼미한 와중에 주머니 속 동전지갑을 털렸던 무서운 기억도 나네요..

소매치기가 지갑을 빼는 상황을 재연한 사진.
40년 전 오늘 경향신문에는 대낮 도심에서 경찰이 권총을 쏘아 검거한 5인조 소매치기단을 검거한 내용이 실렸는데요. 도심에서 총성이 울렸다니 어떤 상황이었을까요?

기사는 이 조직에 대해 동일파(일명 작두파)라는 이름의 “이발용 면도칼로 중무장한 도시의 무법자들”이었다고 소개합니다. 이들은 경찰과 맞부딪칠 때마다 숨기고 있던 면도칼을 휘둘러 10여 명의 경관에게 중상을 입혔기 때문입니다. 접선 장소를 덮치다 면도칼에 맞고 32바늘을 꿰매는 중상을 입은 경우도 있었다고 하니 경찰들에게도 공포의 대상이었겠네요.

기사와 함께 실린 사진 속에 누워있는 사람은 동일파의 두목인데요. 면도칼을 휘두르다 어깨에 총상을 입고 서울대병원에서 치료 중일 때 찍힌 사진입니다. 일당을 검거한 경찰은 “총 없이는 못잡을 놈들이었다. 권총으로 경종을 울렸다는 점에서 떳떳했다고 본다”고 말했다는군요. 기사는 “소매치기를 잡기 위해 경찰이 권총까지 사용했다는 것은 그만큼 조직 소매치기단이 지능화하고 포악해졌다는 반증”이라고 전했네요.

1979년 11월26일 경향신문 6면
서울 시내에서 각자 활동하던 소매치기들이 한 조직으로 뭉친 건 교도소에서 ‘동일’이라는 별명의 사내를 만났기 때문이었습니다. 77년 봄, 도봉구 쌍문동 모 다방에 모여 소매치기단을 조직한 이들은 두목 동일(30·본명 박명근), 부두목 용이(32·본명 박상용), 바람잡이 점돌이(29·본명 양점수)·오바(26)·종업(40) 등 5명입니다.

이들은 평소 따로 지내다가 접선해 범행을 시도하곤 했는데요. 접선 장소는 주로 장충동이나 종로의 유명 제과점이었고, 범행 장소는 명동·신세계앞·동대문·남대문지하도 등 서울 도심이었습니다. 대범하게 정오에서 오후 4시까지 주로 낮시간에 범행을 저질렀고, 수표는 우체통에 집어 넣는 철저함을 보였습니다.

특히 서로 이름 대신 별명을 부르고, 서로 주소도 모르게 하는 지능적인 점조직 수법을 활용한 것이 주효했습니다. 바람잡이 종업이 맨 먼저 검거됐지만 나머지 4명의 이름과 주소조차 알아내지 못했다네요.

이들은 범행 후 돈을 분배하면 다음 범행을 위한 박치기(접선) 장소를 정하고, 만약 한 명이라도 경찰에 붙잡히거나 곰(형사)이 접선장소에 나타나면 상의를 벗어 먼지를 터는 등의 특수신호를 보내 장소를 옮기는 ‘곰바위 전법’도 구사했다고 합니다.

부산에 등장한 소매치기 경고 팻말.
덕분에 이들은 2년6개월 동안이나 경찰 수사망을 교묘히 따돌렸습니다. 검거 당시까지 범행 횟수는 무려 500여 회, 피해 액수는 5억여원에 달했습니다. 두목인 박씨는 소매치기로 모은 자산을 활용해 명동에서 나이트클럽까지 경영하고 있었다는군요.

지금도 소매치기가 없지는 않지만, 정말 많이 줄어들었죠. 사람들이 예전만큼 현금을 많이 들고다니지 않아 소득이 크지 않기도 하고, 곳곳에 설치된 폐쇄회로(CC)TV 덕분에 빠른 검거가 가능하다고 하네요.

그래도 연말을 앞두고는 노파심이 생기는데요. ‘제야의 종’ 인파에 섞인다거나, 송년회로 술을 많이 마시고 귀가하는 길에는 각별히 조심하는 게 좋을 듯합니다. ‘그분들’에게는 연말이 대목이니까요.

임소정 기자 sowhat@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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